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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옆 구석에 보이는 흙에 대한 궁금증

1. '부서지는 바위'에 대한 기억


어린 시절의 부서지는 바위에 대한 기억  



어릴 때, 동네 친구 집 길옆 담벼락은 썩은 바위덩어리였다. 바위덩어리인 데, 작은 돌로 치면 쉽게 부서지고 작은 조각은 손으로 뜯어낼 수도 있었다. 떼어낸 조각을 손으로 비비면 쉽게 가루가 되기도 했다. 겉으로는 이끼가 끼어서 그런지 일반적인 바위의 겉모습과 다름이 없어 보이지만 긁어내어 속을 보면 황갈색으로 되어 있었다. 돌처럼 치밀하고 단단함을 느낄 수 없었다. 옛날에 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성벽을 만들 목적으로 흙을 단단하게 쌓아 놓았는 데 세월이 흘러 흙도 돌도 아닌 지금의 모습으로 된 것이라는 상상도 했었다. 하지만 모두들 돌이라고 했다. 돌이 썩어 있다고들 했다. 실제 돌 모습이 썩은 것처럼 물러졌으니 썩었다는 말이 일면 틀린 것은 아닌 것 같은 데, 그 단단하던 돌이 썩었다는 것이 믿기질 않았었다. 지금도 썩는다는 두 단어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이 당연하게 느끼는 데, 어린 시절의 머리 속에는 두 단어의 연관성이 띠끌 만큼도 없었으니 돌이 썩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였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돌이 비바람에 풍화되어 세월이 지나면 돌이 깍이고 기이한 모습이 된다고 할 때도 설마 그 단단한 돌이 어떻게 그냥 물과 공기의 약한 흐름에 깎이는 지 믿어지지 않았었는 데, 설마 깎인 것도 아니고 썩다니,… 한마디로 궁금덩어리였다.


최근 근처 구름산에서도 썩은 바위를 발견하였다. 군부대로 통하는 길을 만들면서 산 중턱을 깎은 절개면에 금이 많이 간 바위가 보였는 데, 조각을 떼어 손으로 만지니 스르르 부서지는 썩은 돌이었다. 썩은 바위 위에 두껍게 쌓여 있는 흙과 큰 나무들이 없다면 어린 시절에 봤던 그 썩은 바위에 같은 것이었다.

 



        삼성산에서도 썩은 바위를 여러 군데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화강암이 기반암인 삼성산으로 가는 길에는 바위가 썩어서 굵고 하얀 모래와, 모래가 더 부셔저서 생긴 하얀 바위가루들이 쌓여 있다그리고 군데군데 화강암이 썩어서 소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일부러 중간중간에 어린 시절의 그 썩은 바위를 기억 밖으로 꺼내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세월이 지나 50이 넘어서도 어린 시절 친구 집 담벼락의 썩은 바위덩어리가 뇌리에 생생하게 기억되는 것은 그 때의 궁금함이 정말 대단히 탄탄하게 뇌의 기억 신경망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뇌 신경망 밖으로 끄집어내게 한 것은 뇌리에 스치듯 어느 한 순간의 반짝이는 자극 때문은 아니었다. 십 수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비슷한 궁금함을 느꼈던 몇 가지 경험들 때문이다. 흙과 관련된 궁금점 들이었고, 최근에 흙의 기원이 바위라는 것을 알면서 어린 시절의 부서지는 바위에 대한 궁금증은 이제 아하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보도블럭 틈새에서 자라고 있는 풀



어렸을 때 어머니를 따라 도회지로 외출을 하면(도회지 하면 서귀포 시내나 제주시 시내였다) 항상 듣는 얘기가 있었다. “허천 보지 마라”. 어린 마음에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이나 잘 정돈된 길거리, 모든 것이 평소에 보지 못한 것이었으니 신기할 따름이었고 눈은 언제나 어머니의 시야를 벗어나 엉뚱한 곳에 머물고 있었을 것이다. 어린 애가 혹시나 엄마를 따라오지 못하고 길을 잃을까 봐서 항상 막내에게 허천을 보지 말고 단단히 따라오라는 타이름이었다.  


요즘도 인도를 걸어갈 때 항상 허천을 본다.  보도블럭 사이에서 자라고 있는 잡초, 보도와 벽돌 벽사이의 틈에서 자라고 있는 잡초, 심지어 사람이 손길이 닿지 않는 구석에서 자라고 있는 작은 나무들이 나의 눈을 빼앗아가는 것들이다. 매일매메일 보는 데도 불구하고, 키덜트(kidult)처럼 본능적으로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다. 메일 바라봐도 지겹지가 않다. 독산역의 육교에서 오동나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모습은 사실 누가 보더라도 신기한 모습이긴 하지만,…

 





 



이러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곳에는 사실 흙이 없다. 자동차가 일으키는 먼지와 바람이 불어서 실선처럼 가늘게 갈라진 틈에 쌓인 먼지들을 흙 삼고, 스며든 빗물로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그 먼지들이 충분한 양분을 공급하고 또 틈새로 스며들어 머물고 있는 물은 충분할까?

 



사무실 화분에 안착한 괭이밥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서 10여년 전 사무실에 꽃나무가 심어진 작은 화분이 하나 있었다. 전임자가 가꾸던 것을 물려받은 것이었다. 흰색 화분에 구슬 같은 황토로 된 화분돌(하이드로볼)로 채워져 있었고 초록색의 잎을 가진 꽃나무가 아담하게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사무실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자리를 정비할 때, 햇빛이 잘 비치는 창가로 화분을 옮겨 두었다. 가끔씩 환기를 위하여 창문도 열어두는 데, 어느 날 화분의 하이드로볼 사이로 작은 풀이 자라고 있었다. 괭이밥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집 근처 에 있는 괭이밥 한두 잎을 따서 씹으면 새콤한 맛이 나던 풀인데, 공장단지 지역의 사무실 창문을 통하여 날아든 괭이밥 씨가 화분에 내려앉아서 싹을 틔운 것이었다. 차를 마시다 남으면 꽃나무보다는 괭이밥이 잘 자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화분에 뿌려주곤 했다. 화분의 꽃나무는 사람이 정성을 들여서 물도 주고 쓰다듬기도 해서 사랑을 많이 받지만, 홀로 날아와서 싹을 틔운 괭이밥은 앞으로도 혼자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일종의 측은지심을 느꼈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괭이밥이 많이 자라서 노란 꽃을 피우고 씨앗도 맺었고, 꼬투리가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야물어갔다. 어는 날 대견스러운 모습의 괭이밥이 어떻게 자랐는 지 궁금하여 뿌리째 뽑았다. 뿌리가 왕성히 뻗어나가고 수많은 뿌리털이 한 움큼의 흙을 감싸 안은 모습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애개개... 뿌리는 연약했고, 뿌리에 묻어 있는 흙이라곤 뿌리 표면에 살짝 붙어 있는 정도였다. 씨가 처음 창문을 통하여 날아와서 화분의 하이드로볼 사이로 들어가 흙 위에 내려 앉았고, 흙을 갈아 주지 않았으니 뿌리가 깊이 들어가지 못한 것이었다.   뿌리를 내리고 꼬투리까지 터질 정도로 자라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 적은 양의 흙 속에 괭이밥의 잎과 줄기를 만들어주고 꽃을 피워주며 꼬투리까지 만들어 주는 물질이 있다는 것일까 하는 궁금함이었다.





 

콘크리트 위에서 나무가 자란다.



애들이 어렸을 때, 대구 처가에 가면 신천 강변 공원을 장인어른이나 장모님, 그리고 애들과 같이 산책하는 경우가 많았다. 잠시 쉬는 틈이 있을 때 강가로 가면 강에는 물은 잔잔하게 흐르고, 오리 같은 새들이 유유자적 노닐고 있고, 가끔씩은 물고기가 왔다 갔다 노니는 모습이 보인다.  물론 강과 산책로 사이의 제방에는 작은 덤불나무들과 키 큰 풀들이 우거져 있다. 여기서 내 눈을 떼지 못하게 한 건 오리도 물고기도 아니었다. 그것은 콘크리트 블록으로 된 제방 위에 덤불과 키 큰 풀들이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번 키가 크게 자란 망초를 당기는 데 뿌리가 얼마나 단단하게 박혀 있는 지 뽑히는 대신에 뿌리 근처에서 부러져 버린다. 부러져 버린 뿌리 밑동을 뽑아보면 보통 밭에서 뿌리를 뽑은 것 같은 흙은 거의 묻어 있지 않다. 흙이 없는 것이다. 덤불과 식물 잎들이 무성한 곳에는 제방의 콘크리트 모습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 멀리서 보면 콘크리트 제방은 없고 흙으로 된 제방에 나무와 풀들이 자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면 필시 정비되지 않은 흙으로 된 강변의 제방이라고 말할 것이다. 내 눈을 더 놀라게 하는 것은 그런 식물 중에 이미 줄기 두께가 수 Cm는 됨직한 나무도 콘크리트 제방 위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있는 모습이다

어린 시절을 촌에서 자라면서 일상으로 흙과 식물을 보고 만졌지만, 공학만 공부했으니 식물학이나 토양학도 모르고 더군다나 식물 뿌리가 어떻게 자리를 잡고 성장해 가는지는 더 몰랐기 때문에 눈앞에 있는 콘크리트 위에 뿌리를 내리는 모습은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은 채, 자연의 오묘한 이치로만 머리 속에 새겨지게 되었다

20조를 들여서 4대강을 정비해도 인력을 동원하여 정기적으로 콘크리트 블록 위의 잡초와 막 뿌리를 내리려고 하는 작은 나무들을 제거해 주지 않으면 몇 년 뒤에는 다 저러한 모습이 되겠지?


창원 원이대로 가에 자리 잡은 상남도서관 옆에는 언덕을 절개하여 길을 넓은 흔적이 있다. 인도 옆의 언덕의 경사가 거의70도는 됨직한 모습이 자연적인 경사가 아닌 절개지 임을 말해 준다. 아마 1980년대 창원 도시계획을 세울 때 언덕을 절개하여 길을 넓혔던 것 같다. 그 절개 면에는 두께가 20cm정도는 됨직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고, 덩굴과 온갖 식물들이 덮혀 있어서 무심코 지나치곤 했는 데, 어느 날 덩굴 사이로 자세히 보니 이끼가 잔뜩 낀 콘크리트 옹벽이 보였다

! 여기도 깨끗한 콘크리트 모습이었는 데, 세월이 지나서 신천 변 콘크리트 제방에서 보았던 것처럼 나무와 식물들이 자라서 이렇게 된 것이구나!. 아무것도 아닌 당연한 모습이지만 식물이 자라기 위해서는 흙과 양분과 물이 있어야 하는 것을 상식으로 무장하고 있던 나에게는 흙이 없는 콘크리트 위에서 나무와 풀들이 저렇게 잘 자라고 있는 것이 그저 자연의 신기함으로 느껴졌다.  자연의 힘이 참으로 오묘하다는 혼잣말만 되 뇌이면서 한참을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바위 산에도 나무가 자란다.



등산길마다 보게 되는 바위틈에서 힘겹게 자라고 있는 나무의 모습은 나를 호기심의 극한까지 몰고 간다. 흙이 모두 깍여가서 바위밖에 남아 있지 않은 산 정상 어디를 가도 나무는 자라고 있고, 비에 흙이 모두 씻겨가서 바위 밖에 없는 산등성이 구석구석에도 나무는 자라고 있다. 흙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좁은 바위틈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만 해도 신기해 죽겠는 데, 제법 굵은 두께로 키도 제법 크면서 나뭇잎도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모습은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자연의 위대함을 감상하게 만든다.  바위에서 나무가 자라는 틈이라고 해봐야 수mm이내의 간극이고, 그 속에 흙이 있어봐야 그 큰 나무가 자라기에는 너무 미미한 양일텐데 대체 어떻게 자라고 있는 건지 혼자 감탄사만 내다 한참 만에 자리를 뜰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바위 속에 큰 틈들이 벌어져 있어서 흙과 물과 양분이 있는 것일까 하는 상상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