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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에 보는 가로수에 대한 궁금증

1. 출퇴근 길마다 보는 가로수

 


사무실이 독산 역을 사이에 두고 15분 거리에 있어서 출퇴근 길은 항상 걸어 다닌다. 독산동의 오피스텔을 나와서 독산역까지 가는 범안로 변에는 지름이 30cm 정도는 되는 플라타너스 나무(양버즘 나무)들이 늘어서 있고, 독산역을 지나 사무실로 가는 가산디지털3로 변에는 지름이 10~20cm 정도 되는 은행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나뭇잎이 떨어져 버린 겨울에는 썰렁한 거리의 모습을 대변하지만, 잎이 무성한 계절에는 여러모로 도움을 준다. 스마트 폰의 날씨 앱에서 보여주는 비올 확률이 20%라는 예보만 믿고 우산을 챙기지 않고 방을 나서는 데 비가 올 때,...어어어 황당한 기분도 잠시,양버즘 나무의 커다란 잎들은 아직 세차지 않은 비를 막아주기에 충분하다. 또 가을에 노랗게 물든 은행 잎은 어떠한가? 바람이 불고 나서 인도와 차도 한쪽 구석에 떨어져 쌓여 있는 노란 은행 잎들을 보면 건조한 중년의 마음을 흔들어 꼭사진을 찍게 만든다. 가로수 심을 때 우연치 않게 섞인 암놈나무에서 떨어진 은행이 사람 발에 밟히고 차 바퀴에 치여서 똥 냄새를 풍기는 것도 노란 색의 감동에 묻혀 잊어버린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 길에 가로수를 볼 때마다 측은하기도 하고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숲 속이나 정원에 있는 나무들은 비가 오면 땅으로 스며든 물을 한껏 흡수할 수도 있고, 땅에 떨어진 낙엽들이 썩어 다시 거름이 되므로 나무들이 양분으로 흡수할 수 있지만, 가로수는 도저히 그럴 조건이 아닌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빈 틈 없이 땅을 가리는 보도 블록들로 인하여 대지를 충분히 적시고도 남을 비가 오더라도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모두 아스팔트와 인도의 경사진 표면을 따라 배수로로 내려가서는 모두 어디론지 사라지니 저 속의 흙은 물도 한 방울 없이 푸석푸석할 것이란 상상이 간다. 내가 무슨 나무를 사랑하는 운동가도 아니고 흙과 어떤 교감을 나누는 것은 아니지만, 흙을 덮고 있는 단단한 껍데기들을 모두 들어내고 흙이 숨을 쉴 수 있게 해서 나무를 해방시켜주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2016 중국의 허난성 상추시에서 도시의 먼지를 줄이기 위하여 흙에 노출되어 있는 가로수의 밑동 부분을 모두 시멘트로 덮었다가 나무가 숨을 못 쉬게 한다는 여론의 호된 비난에 하룻밤 새에 다.시 원상 복귀했다는 인터넷 기사가 있었다[각주:1]나무 밑동의 그 조그만 면적이 흙이 그나마 빗물이 스며들게 하고 나무 뿌리에게는 숨을 쉬게 하는 유용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금한 마음에 내가 새들어 사는 원룸 근처의 독산동 동네주변을 살펴보니 나무 밑동이 시멘트로 꽁꽁 발라진 키가 큰 은행나무 모습을 발견했다나무 밑동뿐만 아니라주변을 바라보아도 온통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도통 흙을 볼 수가 없다하지만그 나무는 너무나 싱싱하게 서 있다.  놀랍게도 가로수는 흙과 공기 사이를 꽁꽁 막아 공기도 통할 것 같지 않은 보도블록 사이를 단단하게 박혀서 대부분 늠름하게 성장한다보도블록 사이에 심어져서 꽉 막힌 보도와 차도로 흙 속에 물기라고는 없을 것 같고누가 양분을 공급해 줄 것 같지도 않은데가로수는 여름이면 어김없이 무성한 잎으로 그늘을 만들고가을이면 열매를 맺는다그리고는 겨울이면 모두를 털어낸다나뭇잎과 열매는 청소부에 의하여 깨끗하게 치워져서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가로수가 뿌리박고 있는 땅으로 돌아가지 않는다흙 속의 양분공기 그리고 땅속의 물과의 화학작용으로 만들어진 물질들을 밖으로 꺼내서 버린다







 나뭇잎의 증산작용으로 인한 수분 증발도 많을 것이고, 해마다 낙엽과 열매로 사라지는 양분의 양도 많을 텐데, 가로수는 어떻게 저렇게 당당하게 자라고 있을까? 이것이 바로 출퇴근 길에서 항상 희한한 느낌으로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던 것이었다. 아마도 가로수의 뿌리가 상상을 넘어설 만큼의 거리와 깊이로 뻗어 가면서 끊임없이 멀리 있는 홁 속의 수분과 양분까지 흡수하고 있음이 틀림 없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책, 컴퓨터, 계측기 그리고 디지털 데이터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현상을 해석 해왔던 30년 시간이 내 주변에서 항상 그대로 있어왔던 모습들마저 내게는 신기하게 비쳐진 것이다


 ‘라일락 꽃 향기 맡으면/잊을 수 없는 기억에/햇살 가득 눈부신 햇살 안고/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잊지 않으리/내가 사랑한 예기/여위어 가는 가로수 그늘 밑 그 향기 더 하는 데…’.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아래 서면이라는 노랫말이다. 플라타너스 가로수의 커다란 잎이 한여름 무성하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가을이면 낙엽이 길가에 흩날리는 낭만도 느끼면서 노래를 만든 작가의 마음으로 바라볼 수 도 있건만, 난 아직도 메마른 엔지니어의 가슴으로 세상을 보면서 멋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일종의 자괴감이 들기도 하다. 하지만 세상을 보는 창들은 여러 가지가 있고, 내가 가로수를 바라보고자 하는 것도 그 중에서 하나라는 위안을 삼고자 한다.




  1. 중앙일보, 2016.8.11, http://news.joins.com/article/20435785 [본문으로]